신세계, 스타필드에 ‘할리우드 세계관’ 입힌다
신세계그룹이 오프라인 유통 공간의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쇼핑몰을 단순히 물건을 사는 장소가 아니라, 콘텐츠를 경험하고 시간을 소비하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영화·드라마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할 수 있는 대형 투자에 나섰다.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신세계프라퍼티를 통해 파라마운트의 워너브라더스 인수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원화로는 약 1조4000억 원 규모다. 신세계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두 회사가 보유한 콘텐츠 IP를 스타필드와 스타필드마켓, 향후 개발 예정인 복합쇼핑몰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오프라인 유통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 온라인 쇼핑 비중이 커지면서 대형 점포는 더 이상 가격이나 상품 구색만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기 어려워졌다. 소비자가 시간을 내서 매장을 찾게 하려면 구매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 신세계가 주목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신세계는 스타필드를 통해 체류형 유통 모델을 실험해 왔다. 2016년 스타필드 하남을 시작으로 고양, 안성, 수원 등으로 출점을 확대하며 쇼핑과 외식, 문화, 휴식 기능을 결합했다. 고객이 오래 머물수록 소비 접점이 늘어나고, 반복 방문 가능성도 커진다는 계산이었다.
성과는 숫자로도 나타났다. 스타필드 수원은 지난해 매출 1078억 원, 영업이익 376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각각 2.8%, 8.9% 증가한 수치다. 스타필드 하남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성장했다. 올해 8월 기준 하남점 누적 방문객은 2억5000만 명에 이른다.

대형마트 역시 같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마트는 일부 점포를 스타필드마켓으로 전환해 장보기 공간에 휴식과 문화 기능을 더했다. 죽전, 일산, 동탄, 경산점 등 전환 점포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했다. 이마트 전체 매출 증가율 2.7%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신세계가 할리우드 IP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체류형 공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다. 쇼핑몰 안에 인기 영화나 드라마 세계관을 구현하면 방문 이유가 한층 뚜렷해진다. 단순히 밥을 먹거나 장을 보는 고객뿐 아니라 팬덤과 가족 단위 방문객, 관광객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
활용 가능한 콘텐츠로는 ‘미션 임파서블’, ‘스타트렉’, ‘탑건’,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등이 거론된다. 이들 IP는 글로벌 인지도가 높고 팬층이 두꺼워 체험형 시설, 팝업 공간, 테마존, 굿즈 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점포에 어떤 콘텐츠를 적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세계가 개발 중인 스타필드 청라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청라에는 쇼핑몰과 멀티스타디움, 호텔 등이 결합될 예정이다. 스포츠와 공연, 숙박, 쇼핑을 한 공간에서 연결하는 구상이다. 여기에 글로벌 콘텐츠가 더해지면 기존 쇼핑몰보다 방문 목적을 다양화할 수 있다.
수익 모델도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유통 공간은 임대료와 판매 수수료, 식음료 매출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IP 기반 공간은 체험 입장권, 굿즈, 브랜드 협업, 팬 이벤트, 관광 상품 등으로 수익원을 넓힐 수 있다. 오프라인 점포가 콘텐츠 소비와 상업 활동이 결합된 복합 플랫폼이 되는 셈이다.
다만 대규모 투자에 따른 부담은 피하기 어렵다. 투자금만 약 1조4000억 원에 달하는 데다, IP 활용에 따른 구체적인 수익 구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콘텐츠를 실제 공간에 구현하려면 추가 시설 투자와 운영 비용도 필요하다.
신용평가업계도 신중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 투자로 신세계프라퍼티의 재무 안정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협업 방식과 수익 창출 구조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투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봤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투자를 공간 사업의 확장으로 보고 있다. 그룹 측은 글로벌 콘텐츠를 오프라인 공간에 접목해 고객 경험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활용 계획은 투자 이후 단계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신세계의 행보를 오프라인 쇼핑몰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한다. 고객을 오래 붙잡고 다시 오게 만드는 공간만이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의 1조4000억 원 베팅은 유통업이 콘텐츠 산업과 결합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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